총 게시물 9건, 최근 0 건
   
[분열왕국시대]

북이스라엘 역사

글쓴이 : 포토바이블 날짜 : 2014-12-14 (일) 11:19 조회 : 2078
[북왕국의 수도였던 사마리아]

이스라엘 분열 서론

솔로몬 사후 팔레스타인은 북쪽은 애굽 제22왕조 시삭에게 망명했던 여로보암1세를 이스라엘왕으로 선택하였고 남쪽은 르호보암이 솔로몬의 뒤를 이어 다스림으로 분열되었다. 분열된 이스라엘은 공존과 대립을 같이 하면서 나갔다.
사울, 다윗, 솔로몬 3대에 걸쳐 100여년간 이루어 오던 통일 왕국은 BC931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어 이스라엘은 이류국가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후 북이스라엘은 약 200년간 지속해오다가 BC721(722)년 호세아 왕 제9년에 앗수르의 살만네셀에게 멸망 당하고 남유다는 북이스라엘보다 135년 더 존속해오다가 시드기야 왕9년(BC586,587) 바벨론에게 멸망당했다.

1.북이스라엘(북왕국)의 시초(기원전930-880년):초대왕 여로보암-나답-바아사-엘라-시므리
 이스라엘 제1대왕이 된 여로보암1세는 비록 분국은 되었지만 예루살람은 남북 두 왕국 모든 민족에게 모국을 그리워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해마다 백성들이 제사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내력마으로 민심이 남쪽 르호보암에게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예루살렘 대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스라엘의 신앙의 대상을 삼게하였다.(왕상12:28) 여로보암의 이같은 노력은 상당한 효력을 발휘하여 분열 공존의 상태가 되었다.
 그 뒤를 이은 나답은 1년만에 바아사에 의해 살해되었다. 바야사의 아들 엘라는 시므리에게 살해되고 시므리는 7일 동안 왕위에 오른 최단 통치자가 되었다.(왕상16:1-20)

2.오므리 왕조(기원전880-840년) 오므라-아합
 시므리를 스스로 불에 타 죽게하여 왕이 된 오므리는 디브니를 쳐부수고 왕권을 확보하였다.(왕상16:21-23) 왕이 된 오므리는 사마리아를 견고케 하고 하나님 앞에 악을 행했다. 오므리의 국권 강화로 모압왕 메사는 조공을 바쳤으며(왕하3:4) 그 명성은 앗수르까지 알려져 ‘오므리 땅’ ‘오므리 집의 땅’이란 명명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부유층은 부를 누릴 수 있었다.
 오므리의 뒤를 이은 아합은 시돈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 베니게왕국과 국교를 친근히 할 수 있었으나 바알과 아세라 숭배로 종교정책에 혼락을 초래하여 유일신 하나님의 경배자는 핍박을 받게 되었다. 이때 엘리야가 활동했다.(왕상16:29-19:21)
 외세적으로 수리아왕 벤하닷의 침입과(왕상20:1-43) 모압의 독립의 기미와 앗수르의 힘을 막아야 하는 처지에서 앗수르의 새 왕 살만네셀3세때 기원전853년 칼칼 전투로 피차 큰 승부없이 끝났다. 이때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했는데 이때 엘리야의 저주와 함께 길르앗 라못의 정벌전에서 죽었다.(왕상22:1-40)
 그 아들 아하시야가 대를 이었으나 그도 죽고 그 동생 요람이 왕위에 올랐다. 요람이 남유다왕 여호사밧과 에돔과의 협력을 받아 모압 정벌전에 나갔으나 싸움은 승패없이 끝났다. 이때 선지자는 엘리사였다.(왕하3:1-27)
 그후 북쪽 수리아의 벤하닷의 침입으로 사마리아가 포위 당했으나(왕하6:24-7:20)수리아의 철수로 구원을 얻은 요람은 수리아왕 하사엘과의 싸움에서 부상하여 치료를 받던 중 예후의 모반으로 참살 당하였다.(왕하9:14-24)

3.예후 왕조(기원전840-750년)년:예후-여호아하스(요아스)-여로보암2세-스가랴
 예후가 모반하여 왕위에 오르자 곧 아합의 가문을 철저히 숙청하고(왕하10:11) 바알 숭배자들을 철저히 색출하여 살해하는 종교 정화를 실시했다. 그러나 다메섹의 하사엘왕의 침입을 받았을 때는 살만네셀에게 조공을 보내 도움을 받으려 했으나 앗수르의 억제에도 불구하고 수리아의 하사엘왕은 요단 동ㅍ련을 정복하고 이스라엘과 모압을 압제하게 되었다.(왕하10:23-33)
 그리고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에 올랐을 때는 하사엘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나(왕하13:1-9,22-23) 하사엘이 죽고 벤하닷이 일어났을 때는 앗수르의 힘에 눌려 괴롭힐 여가를 갖지 못하자 요아스는 세차례의 공격으로 선왕이 잃었던 성읍들을 되찾았다.(왕하13:14-25) 또한 대항하는 유다왕 아마샤를 치고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을 취하고 아마샤왕을 사로잡았다.(왕하14:8-14)
 요아스의 뒤를 이은 여로보암2세는 행운의 외세 관계로 이스라엘에 일대 번영을 가져왔다. 때를 같이하여 북으로 하맛, 동으로 사해 동편을 점령하여(왕하14:25) 옛날 다윗과 솔로몬의 영토를 거의 회복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와 더불어 사회악도 동반하여 가난한 자들은 신 한켜레 값에 매매되고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로 전락되었다.(암2:6,8 6:17,호13:16) 이 당시의 사회상에 대한 것은 당시 선지자로 활동했던 아모스와 호세아서에 잘 나타나 있다.
번영을 누리던 여로보암2세가 죽자 그 아들 스가랴가 왕위에 올랐으나 6개월의 짧은 통치 후 살룸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하여 예후대는 비참한 종말을 고했다.

4.북이스라엘의 종말(기원전750-722년)
 예후 왕조가 끝난 후부터 북이스라엘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스가랴를 죽이고 왕이된 살룸은 한달도 되기 전에 므나헴에게 죽임을 당했고(왕하15:1316) 므나헴은 앗수르의 세력에 굴복하여 디글랏빌레셋3세에게 조공을 바침으로 멸망을 면했다.
 그뒤 그 아들 브가히야는 2년간 통치 후 그 장관 베가의 반역으로 죽고 왕위에 오른 베가는 앗수르의 세력을 벗어나기 위해 다메섹왕 르신과 결탁하여 유다의 아하스에 협조를 구해 앗수르를 치려했으나 아하스가 반대하자 베가와 르신이 아하스를 치게 되었다. 이에 아하스는 디글랏빌레셋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오게되자 베가와 르신은 디글랏빌레셋에게 패하여 목숨까지 잃었다.(왕하15:30)
 그후 베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호세아는 심한 조공에 불만을 품고 애굽과 힘을 같이 하며 앗수르를 치려고 했으나 애굽은 시삭(셰송크)이 팔레스타인 침략 후(왕하14:25) 힘이 없었다. 이에 디글랏빌레셋 후계자인 살만네셀4세(기원전726-822년)는 눈치를 채고 북이스라엘을 침공해 호세아를 잡아 가두고 사마리아를 3년 동안 포위하는 가운데 그를 죽이고 그의 참모장 사르곤2세(살곤,기원전721-705년)가 사마리아를 완전히 함락시켰다. 이로서 북이스라엘은 선지자의 예언대로 종말을 고했는데 그 이유가 왕하17:7-8에 잘나타나 있다.
           

☞특수문자
hi
   


 
photobible_logo